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책]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팩토리나인

by A6K 2020. 12. 29.

오랜만에 흥미로운 소재의 소설 책을 읽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꿈을 파는 백화점에 취업한 '페니'라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책의 표지에서부터 제목, 소재까지 외국 소설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사실 책 제목만 보고 고른 소설이라 저자 이름도 안 봐서 소설을 읽는 중간까지는 외국 소설인줄 알았다. (읽으면서 '번역 참 잘했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독특한 마을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잠들면 꿈을 꾸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꿈을 얻기 위해 찾아오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꿈을 사러오는 손님들은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반려 동물까지 다양하다. 이 마을에는 꿈을 만드는 꿈 제작자, 꿈을 판매하는 상점(그 중에서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이 가장 인기있다고 한다.), 그리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꿈을 사러온 외부인들을 안내하고, 잠옷과 수면 양말 등을 챙겨주는 녹틸루카 등 꿈에 특화된 직업들이 있다. 아주 재미있는 마을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시간의 신과 세 제자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의 신은 자신의 세 제자에게 시간을 나눠 다스리라고 했다. 첫 번째 제자는 미래를 선택했고, 두 번째 제자는 과거를 선택했다. 마지막 세 번째 제자는 과거와 미래에 비해 턱없이 작고 날카로운 찰나의 현재라는 조각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라고 청한다. 그러면서 말했다.

제가 사랑한 시간은 모두가 잠든 시간입니다. 잠들어 있는 동안에 과거에 대한 미련도 없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이 굳이 잠들었던 시간까지 포함하여 떠올리지 않고, 거창한 미래를 기약하는 사람이 잠들 시간을 고대하지 않으며, 하물며 잠들어 있는 사람이 자신의 현재가 깊이 잠들어 있음을 채 깨닫지 못하는데, 부족한 제가 어찌 이 딱한 시간을 다스려보겠다고 나설 수 있겠습니까?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운영하는 달러구트라는 인물은 이 세 번째 제자의 후손이라고 한다. 다른 인물 중에 예지몽을 만드는 꿈 제작자도 나오는데, 미래를 다스리는 제자의 후손이라고 한다.

출처 : pixabay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꿈을 산 손님들은 꿈 값을 후불로 지불한다. 꿈을 꾸고 난 후에 느끼는 감정의 딱 절반을 요금으로 지불하게 된다. '드림 페이 시스템즈'라는게 깔려 있어서 꿈을 꾸고 난 다음 손님이 느끼는 감정이 꿈 값으로 전송된다. 그 꿈 값은 한 곳에 모여진다. 설렘, 성취감, 자신감 같은 감정이 모이게되고 이 감정들의 시세는 그 때 그 때 바뀐다. 마치 원자재가격이 바뀌는 것처럼... 이 세계에는 은행도 있고, 그 앞에서 도둑질하는 범죄자들도 있다. (주인공 '페니'는 값 비싼 설렘 한병을 도둑 맞는다. 스포일링이지만 나중엔 다시 찾는다)

출처 : pixabay

꿈이라는게 우리의 '기억'에는 크게 연관이 없다. 잠에서 깨어나면 밤새 꾸었던 꿈의 기억은 손위에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사르르 녹아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저 눈송이의 차가움이 손에 남아있듯이 꿈 속에서의 감정만이 남을 뿐이다. 하지만 꿈은 우리의 '잠재의식'과 많이 연관되어 있다.

꿈을 구입하러 달러구트의 백화점에 오는 손님들도 잠재의식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짝사랑을 하던 손님은 꿈을 꾸고 용기를 얻어서 고백을 하고, 아가냅 코코가 만든 예지몽을 꾼 손님은 '데자뷔'를 통해서 새로운 시나리오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한다.

달러구트는 마치 의사처럼 꿈을 사러오는 손님에게 적절한 처방을 내려준다.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손님에게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꿈'을 주면서 스스로 극복하게 만들어준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때일지도 모르죠.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이렇게 건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님들께서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군대에 다시가는 꿈을 꾸거나 20대 후반까지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보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달러구트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받기도하지만 트라우마를 이겨내면 자신감과 자부심을 얻기도 한다. 물론 이런 감정의 절반은 달러구트 백화점으로 전송된다.

꿈 제작자 니콜라스..(라고 쓰고 산타라고 읽는다) (출처 : pixabay)

요즘 연말이라 시상식이 많다. 이 소설의 세계에서도 시상식이 나온다. 꿈 제작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총회를 열기도하고, 연말에는 베스트셀러를 선정하며, 꿈에 대한 미술상, 각본상 등을 수여하기도한다. 딱 요즘 분위기와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남자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머니. 이거 아무래도 꿈인가 봐. 할머니 이제 없는데. 어? 그치?"
"없긴 왜 없어, 이렇게 같이 있잖어. 다 생각하기 나름이야, 안 그래?"
남자가 눈시울을 붉혔다.
"재호야, 울 거 없어.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늦게 올걸.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러면 어떡해."
"더 늦게 오긴 뭘 늦게 와. 진작 왔어야지."
남자가 울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할미는 여기서 무릎도 안 아프고, 좋아하는 나물도 많이 키우고 잘 지낸다. 그러니까 괜히 울고 그러지 말어. 우리 손주랑 만날 수 있어서 할머니 참 행복했다"

마지막으로 '익명의 손님께서 당신에게 보낸 꿈'의 이야기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웹툰으로 만들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까지는 오바일 것 같고... 단편으로 끝내기는 뭔가 좀 아쉬운 세계관인 것 같다.

아무튼 잘 읽었다!!

댓글